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노 마사루 (문단 편집) == 선수 생활 == 1976년도 드래프트 3순위로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하게 된다. 호타준족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동년배의 [[하라 타츠노리]]와 비견되는 장타자 유망주였다. 하라가 도카이대학 진학을 결정하면서 고졸 신인으로 프로에 하라보다 먼저 발을 들이게 된다. 실제로 하라가 3유간 같이 보자며 대학입학을 종용했다고 한다. 입단후 1977~78년까지는 간간히 대타로 출장을 하면서 파워있는 타구를 선보여서 기대를 모았고, 1979년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1년부터 포텐이 폭발, 1979년부터 1992년까지 14시즌 연속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했고, 25홈런 이상을 5번, 30홈런 이상을 세 번, 40홈런 시즌을 한 번 가졌다. 그리고 1984 시즌에 37홈런으로 '''일본프로야구 유격수 출신으로는 최초의 홈런왕'''[* 2018년 현재까지도 유일한 기록이다.][* 다만 [[카케후 마사유키]]와 공동 수상한 것으로, 즉 2017년 현재까지 단독 [[유격수]] 홈런왕은 단 1번도 안 나왔다.]에 오르고, 다음 해인 1985년에는 41홈런을 치며 '''일본프로야구 유격수 단일시즌 최다홈런'''을 기록했다. [* 41개면 웬만한 시즌 홈런왕 수치지만 이 해엔 [[한신 타이거스]]의 [[랜디 바스]]가 홈런을 무려 54개나 치는 바람에 홈런왕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후 은퇴할 때까지 '''유격수 통산홈런 1위(338홈런)'''를 기록하는 등,[* 치바 롯데 시절 친 홈런 4개를 빼면 총 334홈런인데, 이는 [[주니치 드래곤즈]] 구단 사상 최다 홈런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30대 이후로는 거의 유격수로 출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 338홈런 전부가 순수 유격수 포지션으로 기록한 홈런은 아니다.] 주니치의 간판타자이자 주전 유격수로 오랫동안 활약했다. 말년은 고향에 새로이 자리잡은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보냈다. [[http://ja.wikipedia.org/wiki/%E5%AE%87%E9%87%8E%E5%8B%9D|우노 마사루의 통산성적]] 여기까지만 보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포 유격수의 화려했던 일대기라 할 만 하다. [youtube(88ol0ZQaqHU)] 그 이면에는 [[박석민|온갖 몸개그]]와 [[고영민|변태스탯]], 정교함 따윈 개나 줘버리는 야구센스로 유명했다. 특히 수비에 있어서는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던 선수였으며, 그의 [[행복수비|역사에 길이 남을 수비]]는 여러 차례나 자팀 팬들은 뒷목잡고 쓰러지게, 타팀 팬들은 배를 잡고 아프도록 웃게 만들었다. 유형을 정리하자면, 신체조건 좋고 파워 뛰어나고 강견에 포텐 자체는 엄청난데 '''몸아이큐가 떨어져서 정교함과는 거리가 먼 플레이와 어이상실한 개그성 플레이로 지금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장면을 많이 연출했다'''. 1979 ~ 1982시즌 '''4년 연속 실책왕'''을 차지하였으며, 17년간의 선수생활 통산 '''실책왕 7회''', '''통산 270실책'''의 기록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당연히 선수생활 내내 [[골든글러브(일본프로야구)|골든글러브]]를 탄 적이 없다.[* 일본의 [[골든글러브(일본프로야구)|골든글러브]]는 수비 실력으로 평가한다.] 단, 전체 성적으로 평가하는 [[베스트나인]]은 3번 수상했다. 보통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일본야구 선수들의 진기명기를 보면 대부분이 아크로바틱한 플레이[* 이런 플레이를 好プレー라고 칭한다.]가 주를 이루는데 비해 우노 마사루는 죄다 몸개그가 주다.[* 주로 이런 플레이를 珍プレー라고 한다.] 가장 유명한 몸개그 플레이로는 1981년 8월 2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호시노 센이치]] 전 주니치 감독이 유도한 플라이볼을 '''[[호세 칸세코|헤딩]]'''으로 만들어 실점하게 하고[* 이후 38년 만에 KBO에서 [[롯데 자이언츠]] 소속 유격수인 [[신본기]]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이 일이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다. 다만 신본기의 경우 머리를 맞고 튀어나간 공이 얼마 날아가지 않아 옆에 있던 외야수인 [[전준우]]가 잡아 플라이 아웃으로 처리했다는 점. 공식 기록 또한 유격수맞고 좌익수 플라이로 처리되었다.]이에 분노한 호시노가 글러브를 패대기치는 장면[* 당시 요미우리가 지난 시즌부터 이어나가던 연속경기 득점 기록이 걸려있었다. 안티 거인의 화신 호시노로서는 저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주니치 선수들이 호시노가 우노를 폭행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는 뒷이야기가 있었던 건 덤. 아니나다를까 우노는 그날 호시노한테 신나게 아구창 털렸다고 한다. 헌데 반전이 있다면 이날 경기 호시노는 완투승을 거뒀고 그 승리를 이끈 결승타점은 바로 우노의 투런포였다. 나중에 우노가 유튜브에서 그 일화를 풀었는데 본인은 결승타 주인공임에도 그 개그실책때문에 기가 푹 죽어있었는데 호시노가 보자마자 '멍청한 자식, 기운 좀 차리라'라고 주먹으로 아구창 날렸다고 한다. 그러고선 바로 위로를 해줬다고 호시노는 결국 절친 후배인 고마츠와의 요미우리전 무실점 내기에서 졌는데 고마츠 요미우리전 연속득점 저지성공 당시 결승타 주인공도 바로 우노다.]으로서, 1983년부터 방송중인 유서깊은 프로그램인 '프로야구 진기명기 대상' 이 이 플레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유형의 선수들이 가장 키우기 어려운 유형인데도 코치들이 포기 못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신장 181cm인데, 당시만 해도 일본 출신 유격수 중에서 이 정도 키를 가진 유격수는 거의 없었다. 큰 키에 유격수를 보는 선수로선 드물게 파워까지 겸비했으니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탐이 날 수밖에 없다.] 다만 [[유격수]]를 계속 지킨 건 나름 사연이 있었는데, 코치들이 어떻게든 공격이라도 써먹으려고 수비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3루수]]나 [[외야수]] 기용을 시도해봤는데 우노는 묘한 루틴을 가지고 있어서 유격수 이외의 포지션에 출장하는 날엔 타격성적이 항상 바닥을 기었고, 그런 탓에 우노가 코치들에게 유격수로 계속 기용해달라고 간청해서 유격수로만 출장하면 수비는 둘째치더라도 장타는 뻥뻥 쳐대니 계속 유격수로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30대부턴 [[타츠나미 카즈요시]] 등의 신예 선수들에게 유격수 자리를 내주고 주로 3루수로 출장했다. 스탯을 참고해보면 알겠지만 볼넷/삼진(BB/K) 비율(통산 605볼넷/1306삼진)도 주목할만한데 나쁜 볼도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풀스윙으로 일관한 덕분에 삼진이 볼넷보다 두 배가 넘은 시즌이 대부분이었다. 즉, 전형적인 [[영웅스윙]]어.[* 이 선수가 남긴 진기한 기록들 중에는 '''10타석 연속 볼넷'''과 '''23경기 연속 삼진'''도 있다. 10타석 연속 볼넷은 1984년 한신의 [[카케후 마사유키]]와 홈런 공동 1위였는데 마침 마지막 2경기가 한신과의 경기여서 나온 기록으로, 카케후 마사유키도 10타석 연속 고의사구성 볼넷을 얻어내며 공동 홈런왕이 되었다. 참고로 이 중에는 '''만루에서 밀어내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3할 타율을 기록한 시즌은 1989년의 .304 딱 1번뿐이었다.[* 그런데 이 시즌에도 '40사사구/82삼진으로 삼진이 사사구의 2배가 넘었다.] 여기에 거포 타자임에도 찬스 상황에 은근 약했어서, 단 한 번도 100타점을 넘기질 못했다.[* 시즌 최다타점이 위에 나온 유격수 시즌 최다 홈런을 친 41홈런을 친 해인 1985년에 나왔는데, 이때도 타점은 91점에 불과했다.][* 다만 우노는 전성기에 보통 5-6번 타순에 들어섰다. 타점이 많이 나올 타순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고는 하지만 2005년 이마오카 마코토처럼 5번타순에서 147타점이나 벌어들인 사례도 있어 애매하다고 하긴 뭐하다. 굳이 일본 사례를 참고하지 않더라도 2014년에 6번타순에서 100타점을 기록한 [[이승엽]]의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 유격수 100타점은 [[토리타니 타카시]]가 처음 기록했다.(2009년 104타점)] 여기에 통산 78도루를 기록했는데 도루실패가 96개나 된다. 이로서 통산 도루성공율 45%[* [[아카호시 노리히로]]식으로 계산(도루-도실*2)하면 -114나 된다. 당연히 역대 최악.]라는, 어찌보면 실책 기록만큼이나 대단하다고 볼 수 있는 기록을 달성했다. 당연히 개인의 스탯에나 팀 득점에나 도움이 안 되며, 특히 현대의 [[세이버매트릭스]] 기준으로 도루는 70%~80%의 성공률은 가져야 해볼 만하다고 하는데 45%는 불가능한 걸 억지로 한 수준이다. 그래도 이런 류의 거포 [[유격수]]가 워낙 드문데다, 화끈한 스타일 덕분에 오히려 우노를 좋아하는 팬도 많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